<인터뷰> 최초의 점역사 이경희 여사
“옆집 할아버지께 배운 점자, 나의 길이 되었죠.”
‘역사에서 우연을 고려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역사적 진실에 단 한 걸음도 다가가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점역사 이경희(79) 여사도 송암 박두성 선생을 이웃으로 둔 ‘우연’으로 점자와 ‘인연’을 맺었고, 최초의 점역사로 역사에 남게 됐다. 하지만 역사는 단 하나의 우연으로만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이경희 여사의 우연과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 옆집 할아버지께 점자를 배우다
이 여사는 어느 날 ‘옆집 할아버지’의 초대를 받게 된다. 대문에 큰 태극기가 걸려 있고, 유난히 지팡이를 짚은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던 집이었다. 할아버지는 대뜸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빼곡하게 적힌 점들이 ‘점자’였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하지만 대번에 그 문자에 호기심이 생겼다. 할아버지는 점자 타자기를 주며 연습해볼 것을 권유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삼문의 시조를 점자로 찍어 보여드렸다. 할아버지는 매우 흡족해하셨다.
“그때부터 할아버지가 나를 놔주지 않았어요.”
이렇게 말하며 이 여사는 환하게 웃었다. 그때 갓 스물을 넘긴 나이였다.
첫 점역 작업은 송암 선생의 병환으로 중단된 성경 제작이었다. 이 작업을 끝내는 데는 2년이 걸렸다. 아연판에 하나하나 점을 새기는 작업이 쉬울 리 없었다. 송암 선생 댁에서는 늘 더운밥을 지어주시며 격려해주었다. 송암 선생은 병환 중에도 점역 교정을 해주시곤 했다.
“송암 선생님은 몸이 편찮으신 중에도 시각장애인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늘 고민했어요. 저에게도 그런 마음을 심어주려고 노력하셨고요. 그런 마음이 점역을 계속할 수 있게 한 거죠.”
* 점자가 이어준 시각장애인들과의 인연
이 여사는 1959년 용산구 삼각지에 국내 최초로 설립된 한국맹인도서관에서 일하면서 본격적인 점역사로 활동하게 된다. 그러면서 시각장애인 학생들의 교과서 점역을 주로 맡게 된다. 대학 전공서적은 종류도 많고, 방대해서 점역하기 까다로웠다. 외국어 전공자를 위해 영어·독어·불어 점자를 독학으로 익혀야 했다. 시험 때는 시험지 점역은 물론, 답안지 작성을 돕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육법전서’ 점역이에요. 특수한 어휘가 많아서 여기저기 물으면서 점역했죠. 고유의 술어들이 어찌나 까다롭던지요(웃음).”
점자 타자기로 점역하는 일이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그러나 점역한 교재로 공부해 장학금을 받고, 수석을 차지한 시각장애인 학생을 보면 자기 일인 양 기분이 좋았다.
외국 자본으로 지어진 점자도서관이 폐관하고, 이 여사는 ‘한국루터란아워’에서 일하며, ‘맹인통신교리’ 점역을 맡았다. 전국 각지로 교리에 대한 질문을 점자로 찍어서 보내고, 답을 보내오면 채점하고 평가했다. 안마업 관련한 시위 현장에도 시각장애인과 함께했다. 이처럼 점자로 맺어진 시각장애인들과의 교류는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졌다.
이 여사의 결혼식에는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참석했다. 사회는 서울맹학교 이종덕 교장이 맡았고, 시각장애인 성악가 한영숙 씨가 축가를 불렀다. 서울맹학교 음악교사 김태용 씨가 피아노를 연주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많은 시각장애인 하객들이 결혼을 축하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즐겁고 뜻깊은 결혼식이었어요. 결혼식장에 시각장애인들이 그렇게 많은 걸 다들 처음 봤다고 하더라고요(웃음).”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그 당시 교류했던 시각장애인이 이제는 사회 활동을 하지 않거나 세상을 떠났다.
“이제는 시각장애인 행사에 가도 아는 분들이 없어요. 예전에 수다도 떨고 함께 웃었던 기억이 나면서, 허전하더라고요.”
* 점자는 ‘나의 길’... 점자를 배우지 않는 시각장애인 안타까워
세월이 흐르고 점자를 사용하는 시각장애인들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일부 점자는 송암 선생이 만든 그 당시의 점자 형태는 아니다. 이 여사가 60여 년간 세월의 부침과 곡절을 지나오면서도 꿋꿋이 점역해올 수 있었던 비결은 시각장애인들과의 인연이었다.
“아주 옛날에는 점역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인기가 많았지요(웃음). 그래서 점역 일이 정말 끊이지 않고 들어왔어요. 교재를 점역하다 보니 점자의 변화에도 잘 대처했던 것도 비결이었죠.”
지금도 이 여사에게 개인적으로 점역을 부탁하는 시각장애인이 많다. 점자 타자기를 놓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 점역 일을 이어갈 계획이다.
“제가 했던 일이 대단하지는 않지만,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만족해요. 한평생 점역을 하다 보니 이게 정말 ‘나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요즘은 시각장애인들이 점자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참 안타까워요. 시각장애인의 문자인 점자의 중요성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2016. 11. 15. 제965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