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무엇이 달라지나
보건복지부는 지난 달 25일, 7월부터 장애등급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되고 수요자 중심의 장애인 지원체계가 구축되는 등, 31년 만에 장애인 정책이 바뀐다고 밝혔다.
1988년 의학적 심사에 기반한 1~6급의 장애등급제가 도입된 이래, 장애인에 대한 각종 지원이 장애등급에 따라 차등적으로 제공되어 왔다. 이런 방식은 장애인의 개별적 욕구를 고려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장애계에서 제기되었고, 정부는 관계부처 공동 준비 및 장애계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추진 방향을 모색해왔다.
이번에 추진되는 장애등급제 폐지의 핵심은 ‘수요자 중심의 장애인 지원체계 구축’이다. 그동안의 지원체계가 장애등급으로 대표되는 공급자 관점에서 정책개발·집행이 용이한 체계였다면, 새로운 지원체계는 개개인의 욕구와 환경을 보다 세밀하게 고려해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이다.
수요자 중심의 장애인 지원 체계의 주요 내용은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종합조사 도입, 전달체계 강화의 3개 축으로 구성된다.
첫째, 장애인 여부에 대한 객관적 인정을 위해 장애인 등록은 현행대로 유지되지만, 종전의 1~6급의 장애등급은 없어진다.
단, 장애정도에 따라 종전의 1~3급은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으로, 4~6급은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인정된다. 장애인이 심사를 다시 받거나 장애인등록증(복지카드)을 새로 발급받을 필요는 없다. 종전의 1~3급 중증장애인의 우대 혜택도 유지된다.
또한, 장애등급 기준으로 지원된 141개 서비스 중 12개 부처 23개 서비스의 대상이 확대된다.
장애등급이 장애정도로 변경됨에 따라, 건강보험료는 현행 1·2급 30%, 3·4급 20%, 5·6급 10%에서 중증 30%, 경증 20%로, 노인장기요양보험 보험료는 현행 1·2급 30%에서 중증 30%로 확대된다. 특별교통수단 법정대수도 현행 200명당 1대에서 150명당 1대로 증가한다.
건강보험 장애인보장구 및 장애인 보조기기 품목도 단계적으로 확대되어, 흰지팡이 기준액이 2만 5천 원으로 인상되고, 저시력보조안경 내구연한이 3년으로 단축된다.
둘째, 장애인 욕구·환경 등을 고려한 서비스 지원을 위해 ‘장애인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이하 종합조사)’를 도입한다.
종합조사는 7월 1일부터 활동지원급여, 장애인 보조기기, 장애인 거주시설, 응급안전서비스의 4개 서비스에 우선 적용되고, 장애인 이동지원 분야(예: 특별교통수단), 소득 및 고용지원 분야(예: 장애인연금)의 경우 서비스 특성에 맞는 종합조사를 추가 개발하여 각각 2020년과 2022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종합조사를 할 때 장애유형별 특성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평가매뉴얼 및 세부기준을 장애유형별로 세분화하였으며, 활동지원서비스 이용 시의 본인부담금이 인하되어 장애인들의 부담이 최대 50% 경감된다.
셋째, 장애인이 지역사회 독립생활을 위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빠짐없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전달체계를 강화한다.
장애인이 서비스를 몰라서 지원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을 통해 장애유형, 장애정도, 연령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별하고, 누락 서비스도 찾아 안내한다.
읍면동의 찾아가는 상담 대상을 독거 중증장애인, 중복 장애인 등 위기가구 장애인으로 확대하여 복지사각지대를 최소화하고, 기초자치단체(시·군·구)에는 장애인 전담 민관협의체를 설치하여 장애인에게 특화된 사례관리를 강화한다.
종합조사가 적용되는 활동지원 등 4개 서비스를 신청하고자 하는 장애인은 주민등록상 주소지 읍·면사무소 또는 동주민센터를 방문하거나, 우편, 팩스, 대국민 복지포털 ‘복지로(www.bokjiro.go.kr)’를 통해서도 신청이 가능하다.
아울러, 복지부는 “내년 장애인 관련 예산을 올해보다 5,200억 원, 약 19% 증액해 요청했다”고 밝혔다.
매년 신규로 진입하는 활동지원 수급자가 6~7천 명 정도 되므로, 2019년도에는 8만 1천 명을 기준으로 했지만 내년도에는 8만 8천 명에 대해서 예산을 요구했다는 설명이다. 증가하는 예산 5천 2백억 원은 장애인활동지원에 집중돼 있다. 2018년 장애인정책국 예산이 2조 2천억 원에서 올해 2조 7천억 원으로 증액된 것을 보았을 때, 내년도 증액 수준은 올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한편, 복지부가 발표한 정책 내용이 장애인의 삶이 완전히 바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재의 장애인 지원 정책에 허점이 많다는 지적은 여전하다.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는 지난 달 28일 정부 규탄대회를 열고 동정 아닌 권리를 보장하라는 취지의 삭발식을 거행했다. ‘종합조사’ 항목에 시각장애 특성을 반영해 줄 것을 촉구하는 활동을 이어간 것이다. 점수를 얻기 위해 ‘스스로 밥을 못 먹는다’라고 답해야만 하는 시각장애인의 답답함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는 식지 않고 있다.
정부의 형식적인 조사와 나눠주기식 예산 편성은 결과적으로, 장애인들끼리 더 많은 서비스를 받기 위해 더 불편하다고 주장하며 이전투구를 하게 만들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31년 만에 바뀌는 정책이다. 정책이 바뀌었다고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는 없겠지만, 진정한 의미의 ‘수요자 중심’ 장애인 지원체계가 마련되기를 모두가 기대하고 있다.
(2019. 7. 15. 제1029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