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 시각장애인도 사용할 수 있을까?
식당에서는 키오스크(무인정보단말기)를 통해 음식을 주문하고, 집으로 들어갈 때는 디지털 도어록(열쇠 대신 비밀번호, 지문인식, 스마트 카드 등을 이용한 잠금장치)으로 문을 연다. 집 안에서는 홈 네트워크(가정 내 정보가전기기를 유·무선으로 연결하여 제어하는 시스템)를 이용하여 조명과 냉난방을 조절하고, 인덕션 레인지를 사용하여 요리를 한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생활모습이다.
여기서 사용한 기기 모두 별도의 조작 버튼 없는 매끄러운 화면 위에 손가락으로 단순 접촉함으로써 데이터를 입력할 수 있다. 이렇게 ‘터치스크린’은 우리의 일상생활 곳곳에 있다.
하지만, 생활 속 터치스크린 방식이 늘어남에 따라 시각장애인들의 불편함은 커져만 가고 있는 실정이다.
시각장애인 A 씨는 “이젠 간단한 햄버거 하나도 키오스크로 주문을 해야 하고, 집안에서는 난방 온도 조절하는 것조차 터치 방식으로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며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시각장애인들은 더 불편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이하 한시련) 김훈 연구원은 “현재로선 현금자동입출금기처럼 방향키나 선택키를 버튼 형식으로 하거나, 스마트폰 앱을 통해 제어하는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미 모바일 앱 접근성에 대한 지침이 나와 있으니 이것만 제대로 준수하면 터치스크린 접근성에 대한 것은 어느 정도 해결이 될 수 있는데, 왜 안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나타냈다.
김 연구원에 의하면, 국가정보화기본법 제32조 제5항의 규정에 따라 올해 개정한 ‘장애인·고령자 등의 정보 접근 및 이용 편의 증진을 위한 고시’에서 정보통신 제품 종류에 무인정보단말기를 포함하긴 했지만, 단순히 용어 정의만 해 놓은 수준이다. 어느 정도 선까지 접근성을 고려해서 실제 제품이 나올지 알 수 없다.
또한 ‘장애인‧고령자 등 주거약자 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주거약자법) 시행령’ 제4조 별표 항목에 홈 네트워크를 명시해야만 아파트 공동현관 출입문이나 가정 내에 있는 월패드(가정의 거실 벽면에 부착된 형태로 존재하는 홈 네트워크 단말기)를 개선할 여지가 생긴다.
법을 개정하고 실질적으로 적용하기까지는 너무 긴 시간이 소요된다는 문제가 있다. 한시련이 외부 기관과 공동사업으로 무인정보단말기나 스마트폰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선하고 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는 방안이 대안으로 떠오르는 이유다.
한편, 터치스크린에 대한 시각장애인의 고충을 해결하고자 새로운 ‘진동점자’기술을 개발한 회사가 있어 주목받고 있다.
주식회사 밸류컴포짓 임승혁 대표는 3년 전 길거리에서 한 시각장애인이 행인에게 민감한 사적인 내용이 들어간 문자 메시지를 대신 입력해달라 부탁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처음으로, 시각장애인들이 터치스크린 장착 기기를 사용하기 불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대학원 동료들과 기술 개발에 들어가게 되었다.
스마트폰에 기본적으로 장착된 액추에이터(전기적인 신호를 물리적인 운동으로 바꿔주어 진동 기능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를 기반으로 햅틱 기술(촉각과 힘, 운동감 등을 느끼게 하는 기술)을 이용해 점자를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액추에이터는 한 개 뿐이라 기존 점자처럼 위치에 따른 6개의 점을 진동 자극으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동의 길이와 세기 차이를 이용해 3행 2열의 점자를 표현하는 방식을 고안하게 되었다.
진동점자는 1점부터 6점까지, 점이 있는 자리는 길게, 없는 자리는 짧게 진동하여 차례로 점형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자음 ‘ㅋ’은 1-2-4점이므로 길게, 길게, 짧게, 길게, 짧게, 짧게 진동하는 식이다. 진동점자 기술은 국내 특허 2건, 상표 1건 등록을 마치고 특허협력조약(PCT) 국제특허 출원을 완료한 상태이다.
진동점자의 개념은 스웨덴과 같은 복지선진국에서 먼저 생겨난 개념이다. 하지만, 진동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나 체계가 제각각이고, 아직 국제표준이 잡혀 있지 않아 보급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임 대표는 “현재의 진동점자 기술이 음성인식 기술에 비해 다소 불편하다는 점은 동감하고 있다”며, “음성인식 기술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기술로 자리잡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음성안내가 아무리 좋아도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공공장소에서 개인정보나 사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음성인식으로 노출하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현재 밸류컴포짓은 진동점자를 스마트폰 출시단계부터 장착하는 방안을 제조사와 협의 중이며, 키오스크에도 진동점자 시스템을 적용하기 위해 개발하고 있다.
임 대표는 “현재의 키오스크 시장은 제조사가 다양하여, 제조사별로 시스템 구축을 새롭게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며, “다만, 진동점자 시스템 기술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 터치스크린 기기에 진동 액추에이터만 부착하게 되면 어렵지 않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