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악보의 유니버설 디자인, 촉각 악보
음악을 전공하거나 취미로 악기를 연주하는 시각장애인들도 머지않아 점자 악보 대신 일반 악보를 그대로 읽을 수 있게 될 것 같다. 김예지(35세, 1급) 씨가 3D 프린팅 기법을 이용하여 개발한 ‘촉각 악보’가 있기 때문이다.
김예지 씨는 숙명여대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동(同)대학 교육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후, 미국 피바디 음악대학원(2009년)과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캠퍼스(2014년)에서 각각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숙명여대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는 김 씨는, ‘유니온 앙상블’(앙상블: 두 사람 이상의 연주자에 의한 합주를 말함)에서 예술 감독으로 공연을 기획하고, 프로그램을 만들며 연주도 한다. 또한, 실내악단 ‘덕양 트리오’에서 정기적으로 일 년에 한 번 공연을 하는 등 활발한 연주 활동을 하고 있다.
김 씨는 어려서부터 원인도 모른 채 서서히 실명이 진행되어 초등학교 6학년 무렵, 빛만 구분할 정도로 시력이 떨어졌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좋아한 피아노를 치는 데 있어 그것은 장애가 되지 않았다. 음악 자체를 좋아했던 그는 고2 때 진로를 결정하면서, 굳이 피아노가 아니어도 상관없었지만 익숙한 악기이다 보니 피아노를 전공하게 되었다고 한다.
“점자 악보를 보면서 20년 넘게 피아노를 쳐 왔어요. 누구보다도 점자를 사랑하는 사람이죠.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점자 악보에서 불편한 점을 발견하게 됐어요. 점자 악보가 모든 것을 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음악의 내용과 동떨어진 방법으로 풀이가 되어 있는 것들이 있어 음악적으로 해석하고 분석하는 데 있어 방해가 되었어요.”
김 씨는 이에 대한 해결 방법을 고민하던 중 유니버설 디자인(장애의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무리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도구, 시설을 설계하는 것)에 착안하게 됐다. 스마트폰이 원래 장애인을 위해 개발한 상품이 아니지만 장애인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보완되었듯이, 일반 악보를 시각장애인도 볼 수 있도록 해 보자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가 개발한 ‘촉각 악보’는 일반 악보와 같은 모양이지만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구성 요소간 양각 차이를 주고, 저시력인을 위해서 바탕색과의 차이를 줌으로써 촉각이나 시각을 통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화성(둘 이상의 음이 동시에 울리면서 생기는 화음의 연결)의 많고 적음 등, 곡의 특징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점자 악보에 비해 페이지 분량도 적다.
촉각 악보는 해외 어느 곳에서도 아직 개발되지 않은 아이디어로 미국에 특허 출원됐으며, AP통신, 위스콘신 저널 등 미디어에 소개되고 유럽에도 알려져, 문의가 오고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특허 출원 준비 중이지만, 펀드와 기관 협력 등의 문제로 상용화되려면 몇 년 더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 씨는 “점자 악보를 보든 촉각 악보를 보든 선택의 문제이지만, 점자 악보를 모르는 어린아이, 악보를 알고 있던 중도 실명자, 음악을 심도 있게 전공하거나 작곡을 하고 싶은 음악인들에게는 촉각 악보가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한 악보 점역사도 촉각 악보에 대해 “시각장애인의 음악 학습에 있어 점자 악보의 한계를 넘는 방법으로, 아주 유용하고 좋을 것 같다”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2015. 12. 15. 제943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