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의 공간으로 변화시킨 주방, 센토 촉각 요리기구
뜨거운 물과 날카로운 칼날 등 구석구석 위험 요소가 많은 주방에서 시각 장애인들은 지금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누구나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형태에서 벗어나 소수를 위한 배려를 담은 ‘센토(Sento) 택타일 쿡웨어(센토 촉각 요리기구)’는 그래서 특별하다.
이 제품은 이스라엘의 산업 디자인과 학생인 네오라 지글러가 프로젝트 과제로 제출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주방용품 세트다. 아무 설명 없이 언뜻 보면, 새로운 조리 기구 디자인으로 보일 정도로 센토 촉각 요리기구의 디자인은 독보적이며, 점자는 단 한 자도 없다. 다만 시각장애인들뿐 아니라 정안인들도 손끝으로 감촉을 느낄 수 있고, 디자인을 이해할 수 있도록 촉감 디자인이 수놓아져 있다. 이처럼 센토 촉각 요리기구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상품이지만 온전히 디자인으로 촉각을 제품에 구현해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냄비 위에 얹어서 사용하는 실리콘 판은 양 옆을 감싸주는 넉넉한 크기 덕분에 손잡이 대용으로 쓸 수 있으며, 입구가 넓어 조리 시 식재료가 주위로 떨어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모양의 변형이 자유롭기 때문에 내용물을 다른 그릇에 옮겨 담을 때에도 용이하게 쓰이며 안쪽으로 깊숙이 오므리면 뚜껑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국자나 조리 스푼에도 막이 설치되어 있어 냄비나 팬 속으로 빠지는 일이 없고, 미세한 양을 조절해야 하는 향신료용 계량 골무와 액체용, 고체용이 구분된 계량컵과 스푼도 있는데, 특히 각종 향신료나 조미료를 담는 통은 여러 형태의 돌기를 이용해서 사용자가 촉감으로 구분할 수 있도록 각 병마다 다르게 디자인되어 있다.
이는 시각장애인들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필요를 충족시킨 사례에 불과할지 몰라도, 다른 정안인들에게 돌기 형태로 각기 다르게 디자인한 계량컵 등 센토 촉각 요리기구는 색다른 조리기구 디자인 제품으로 충분히 신선하게 다가온다. 여기서 촉각 디자인 요소는 이들에게는 시각장애인들에게처럼 단순하게 필요에 의한 요소가 아니라 미적 요소로서 그들의 감각을 충족시키는 역할을 한다.
센토 요리기구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비시각장애인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상의 것을 좀 더 깊게 관찰하고 따뜻함으로 풀어내는 것 또한 진정한 디자인의 힘이 아닐까?
아쉽게도 아직은 우리나라에서 이 제품을 구입하기는 어렵다. 본 기사를 계기로 수입이 이루어져 우리나라 시각장애인들도 주방에서 일상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2015. 12. 15. 제943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