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의 꿈을 이뤄낸 시각장애인 농부
충남 당진에서 밭농사를 짓는 시각장애인 농부 박청정(남, 74세, 전맹) 씨가 지난 달 ‘박청정 창작 성가집(대건문화사)’을 펴내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30여 년 간 틈틈이 창작한 곡을 엮은 이 성가집에는 교회 성가대에서 합창할 수 있는 찬양곡 17곡과 송영곡 8곡 등 총 25곡이 수록되어 있다.
전국의 교회에서 자신이 창작한 곡들이 성가대에서 울려 퍼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의 꿈이요 바람이다.
농부인 그가 합창곡을 창작하게 된 것은 작곡가가 되겠다는 청년시절의 꿈을 버리지 못해서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어요. 형님은 기타를 잘 쳤고, 누님도 노래를 잘했죠. 그런 환경에서 성장해서 그런지 음악이 좋아 음대에 진학하고자 하는 꿈이 있었습니다.”
6살에 홍역으로 실명한 그는 목포맹학교(현 목포은광학교)를 거쳐 1963년 서울맹학교 사범과를 졸업했다. 그해 가을 목포맹학교 교사로 부임해 초등부에서 3년을 가르쳤다. 이곳에서 정안인 아내를 만나 가정도 꾸렸다. 하지만 당시 교사 임금이 박봉이었고, 아내가 공부에 대한 열정이 있어 학교를 사직하고 무작정 상경했다. 호기롭게 서울로 올라왔지만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다행히 지인의 소개로 안마원에서 일할 수 있었으나, 대학 진학을 꿈꿨던 아내는 넷이나 되는 자녀 양육과 빠듯한 살림살이로 인해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녹록치 않은 서울 살이에서 위안이 된 것은 교회 성가대에 지휘를 하는 것이었다. 교회에서 그의 음악적인 재능을 알고 성가대를 맡겼고, 망상침례교회에서 시작해 한국맹인교회, 애능중앙교회 등에서 오랫동안 지휘봉을 잡았다.
“음악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그래서 정말 열심히 했어요. 작곡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없었지만, 악보를 많이 보고 편곡도 하다 보니 곡을 쓰는 노하우가 생기더라고요. ‘멜로디가 이렇게 흐를 때는 이런 화음으로 가는구나’하고 자연스럽게 익히게 됐죠. 그때부터 작곡에 대한 욕심이 생겼고, 생각날 때마다 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교회의 성가대이지만 자신이 꿈꾸던 삶을 소소하게 누리고 있던 그에게 돌연 위기가 찾아왔다. 육십 대에 접어들면서 발병한 심장병과 고혈압이 30년 동안 생업으로 해온 안마뿐만 아니라, 삶에 위안이 되었던 성가대 지휘도 모두 멈추게 만든 것이다. 병환으로 쇠약해진 몸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요양을 하던 그는 지인과 동업을 위해 충남 당진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사업을 접게 된 후 소일거리를 찾던 중에 아내와 농사를 짓기로 결심하고 400여평의 농토와 집을 구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주중 절반은 당진에 살며 농사를 짓고, 주말에는 교회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회현동 집으로 올라간다고 한다.
작은 농토지만 일반적인 채소는 거의 짓는다. 처음에 감자를 심기 시작해서 지금은 고추, 콩, 고구마, 야콘, 호박, 오이, 가지, 배추, 무 등 거의 모든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퇴비나 비료, 농약을 전혀 치지 않는 유기농으로 재배해 자녀들과 교회에 나눠준다.
농사일은 농약을 안치다보니 잡초를 수시로 매야 하는 것 외에는 별로 어렵지 않다고 한다. 경작은 어깨 너머로 배우며 작물 종류를 늘려나갔다.
“근처에 논도 있고 밭도 있자나요. 옆에서 감자를 심으면 따라서 심고, 고추를 심으면 ‘이 시기에 심나 보다’하고 무작정 따라서 심었죠. 마을 주민들이 지나가다가 신기해하면서 유심히 봐요. 전맹인 제가 혼자서 심고 거두고 다하니까 신기하나 봅니다. 용하다고 칭찬하시기도 하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가르쳐 주기도 해요.”
이렇게 10년 이상 농사한 덕분에 이제는 누구의 도움 없이도 거뜬하게 농사짓는 ‘농사꾼’이 됐다. 그리고 시골의 맑은 공기를 마시다보니 건강도 다소 호전됐다.
농사일을 하면서도 그는 틈틈이 작곡을 했다. 이삼십 년 동안 100여곡도 넘게 만들었지만, 맘에 안 들어서 버린 곡도 수없이 많다.
“음대에서 작곡을 정상적으로 배웠다면 쉬웠을 텐데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창작을 하려고 하니까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졸작이어서 부끄럽긴 하지만 저의 꿈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출간하게 된 거죠.”
버리지 못한 채 간직하고 있던 작곡가의 꿈은 백발의 노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하게 됐다.
성가집은 비매품으로 출간됐다. 그는 성가집을 일반 교회에 배포하고 있다. 맘에 드는 곡을 연주해서 이메일로 보내주면 그것을 CD로 만들어 분배할 계획도 갖고 있다. 내년에는 점자로도 출간할 예정이다.
그는 본지 독자 중에도 책자를 요청하면 보내주겠다고 한다. 출석하는 교회의 성가대에도 전해주면 좋겠다는 당부도 덧붙였다. (문의 010-3744-1291)
자신의 꿈을 이루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랜 세월이 걸리긴 했지만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이루어낸 그의 인생은, 고단한 삶과 처한 환경으로 인해 쉽게 포기하는 요즘 세대들에 귀감을 주고 있다.
(2015. 8. 1 제934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