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시각장애인 상담교사
“아이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시각장애인 최대환(46세, 1급) 씨는 청라달튼외국인학교에서 상담교사로 재직 중이다.
청라달튼외국인학교는 인천광역시 서구 청라국제도시에 2011년에 개교한 학교로 3년 이상 외국에서 살다 온 한국인 학생들과 외국인 자녀들이 다니고 있다. 이곳에서 최대환 씨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12학년까지를 대상으로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상담일을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는 최대환 씨는 사실 처음부터 상담 교사를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1989년 경희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그는 정치학도로서의 꿈을 키웠다. 그랬던 그에게 ‘녹내장’이라는 위기가 찾아온 것은 스물세 살 무렵이었다. 그래도 그는 ‘하나님이 고쳐주실 것’이라고 믿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3~4년이 지나 그의 눈앞엔 더 이상 한줄기 빛도 스미지 않게 됐다.
“어느 시점에 이게 안 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는 충격과 공포감이 엄청 크게 들더라구요. 80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앞을 안 보고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절망하게 됐죠.”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에 절망이 더 크게 찾아왔지만, 그래도 그는 절실한 신앙심이 있었기에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그리고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하시기 위해서 이렇게 만드신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재활훈련을 받았다.
1년 동안의 재활훈련을 마친 뒤 그는 대학교에 재입학했다. 장애인이 된 뒤의 대학생활은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장애 학생을 위한 제도가 전혀 마련돼 있지 않아 스스로 책을 구하고 도와줄 자원봉사자를 구해야 하는 등 ‘장애로 인해 낭비되는 시간이나 노력’이 있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장애인 당사자로서 여러 가지 불편함을 겪으며 어느새 그는 장애인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 전공을 살려 장애인을 위한 제도와 법률을 만드는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차가웠기에 그가 원하는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미국이 장애인의 천국이라는 소리를 듣게 됐다. 막막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를 찾고자 미국의 아이다호 주립대학으로 어학연수를 갔다.
“그곳에서 만난 재학생이 ‘우리 과에 들어오면 장애인을 도와주는 상담 전문가가 될 수 있는데 너에게 잘 맞을 것 같다’고 권해주더군요. 마침 상담 쪽 일이 적성에 맞지 않을까 하고 고민하던 차이기도 했고, 또 이 일도 장애인을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혹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그는 아이다호 주립대학 대학원에서 재활상담과 상담심리학 공부를 하며 석사과정을 마쳤다.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미국에서 홀로 유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가정도 꾸리게 됐다.
졸업 후 그는 미국에서 상담가로서 일을 하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가 바라던 대로 상담가로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지 못했다. 대신 장애인개발원의 제안을 받아 장애인식개선 관련 연구팀에서 일하다가 직업재활교사를 대상으로 보수교육을 하게 됐다.
“늘 상담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어요. 사람들과 대면하기 보다는 컴퓨터와 종이들에 둘러싸여 있어야 하는 현실에 일종이 공허감이랄까, 한계가 느껴지더군요. 그러던 중 아내의 지인 중에 청라달튼외국인학교 관계자가 있어서 상담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됐습니다.”
이후 그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학교로 찾아가 상담봉사를 하게 됐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이기에 매일매일이 즐거웠다. 그렇게 두 달이 흐르고 학교 측은 상담 결과와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면담을 진행해 채용을 확정했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상담 업무는 아니지만, 그는 상담을 통해 아이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에 초등학교 5학년 아이를 상담한 적이 있었어요. 왕따 때문에 많이 힘들어 하던 아이였는데, ‘죽고 싶다’, ‘학교에 오고 싶지 않다’는 말을 자주 했었어요. 그랬던 아이가 상담을 진행하면서 점점 밝아지고 지금은 학교생활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을 때, 저도 행복을 느꼈습니다.”
바라던 꿈을 이룬 그의 새로운 목표는 아이러니하게도 ‘상담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석사 학위를 취득한 ‘인증된 전문가’임에도 “일선에서 일하다보니 자신이 전문가가 맞는가라는 의심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기회가 된다면 저 스스로도 상담 전문가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공부를 좀 더 많이 해보고 싶습니다. 또 퇴직 후에는 중도장애로 인해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을 위해 심리상담 분야에서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2014.11.01 제916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