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교류말하기 대회에서 입상한 박동해 씨
지난 11월 15일, 제10회 한일교류말하기 대회에서 시각장애인이 우수상을 수상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화제의 주인공은 박동해(42세, 1급) 씨로, 그는 ‘편견을 넘어서 꿈을 이루다’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삶과 일본어와의 인연 등을 이야기로 풀어내 잔잔한 감동을 전했다.
한일교류말하기 대회는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과 JET-AA대한민국지부에서 주최하는 대회로 해마다 1200여명이 넘는 이들이 응시하며, 예심을 거쳐 최종 20명만 본선에 입상하여 일본어 실력을 겨루는 대회이다.
이 대회에서 장애인이 본선에 진출한 것은 물론 2위인 우수상까지 수상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박동해 씨의 일본어 실력에 다른 참가자들은 물론 대회 관계자들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저와 같은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당당하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참가 계기를 밝힌 박동해 씨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겪었던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점자교재가 없어 학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일 등을 전하고, 이후 일본어를 접하면서 삶의 목표를 다시 설계하고 일본어 특수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해왔던 자신의 삶에 대해 담담히 표현했다.
2012년 조선대학교 특수교육과에 마흔한 살의 나이로 입학한 만학도로서 주목받은 바 있던 박동해 씨는 중학교 3학년 시절 교통사고로 시력을 잃게 됐다. 3년간 9차례에 거쳐 수술을 받았지만 시력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스스로 (세상을) 떠나려 했지만, 수술 후 병원에서 깨어난 후 제 손을 잡고 미안하다고 하시며 하염없이 눈물을 지으시는 어머니와 한숨만 쉬시며 먼 곳을 바라보시던 아버지의 모습에 ‘다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삶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살고자 노력해왔다. 1990년에 서울맹학교 고등부에 입학하여 직업교육을 받게 되면서 한의사였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동양의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결국 그는 이료교육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전문 침구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머나먼 타지 생활에도 그는 굴하지 않고, 일본 국립 쓰쿠바대학 부설 이료전공과정과 연수・연구과정을 무사히 마쳤다. 또 일본후생성 침사자격증과 구사자격증, 안마・마사지・지압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일본어능력검정시험 1급도 통과했다.
일본 유학을 마친 후 그는 한국으로 건너와 개인 치료실과 복지관 창업교육 강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틈틈이 사회복지 공부를 하여 사회복지사, 보육교사,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취득해 복지시설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가슴 한편에서 그동안 겪어왔던 다양한 경험들과 기술들을 교사가 되어 전하고 싶다는 꿈이 생겨났다.
그렇게 그는 2012년 마흔한 살의 나이로 조선대학교 특수교육과에 진학했다. 쉬운 길은 아니었다. 마흔한 살의 나이로 20대 학생들과 어울리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점자교재가 거의 없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먼저 다가가 손을 내미는 등 마음으로부터 소통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나이로 인한 부담감을 줄일 수 있었고, 동료들과 어울려 다양한 과제들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강의는 주로 녹음에 의존하여 공부해야 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박동해 씨는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 공부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경험을 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내년에 열리는 하계 광주 유니버시아드 대회 조직위원회 통역자원봉사자가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자원봉사자 실무교육과 직무교육은 물론 전문통역 양성교육과정도 마쳤다. 또 행사통역요역 레벨시험에서도 고급 등급 판정을 받아 통역요원으로서의 충분한 자격을 마련했다.
“앤드류 매튜스는 말합니다. ‘당신이 어디 서 있건 지금이 바로 시작할 때이다. 오늘 당신이 기울이는 노력이 분명 세상을 바꿀 것이다’라고 저는 믿습니다.”
(2014.12.01 제918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