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최초 시각장애인 태권도 4단 유단자 김주호 씨
태권도 4단, 해동검도 4단, 합기도 2단, 특공무술 2단에 주짓수(브라질 유술) 3개월차….
시각장애인 김주호(51) 씨의 무술 경력은 웬만한 정안인들 저리가라 할 정도로 화려하다. 취미삼아 모은 병장기만 해도 쌍절곤, 목검, 톤파, 구절편, 컴뱃나이프, 수리검 등 30여개에 달한다.
이것만 보면 경호원이나 이종격투기 선수가 직업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되지만, 놀랍게도 그의 본업은 어휘들로 세상을 아름답게 그려내는 시인이다.
시인과 무술가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모습을 갖고 있는 그에겐 또 다른 모습이 있다. 취미로 시작했지만 웬만한 전문가는 뺨칠 정도로 역술 지식을 갖고 있는데다 크로매틱 하모니카 연주도 수준급이다. 거기에다 커피 전문점을 운영했던 만큼 커피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이처럼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서 살자”라는 삶의 모토 덕분이었다.
“열심히 잘 살면 되는 것 같아요. 목표를 세운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더라구요. 대학원 가려고 준비도 하고 커피전문점도 꽤 잘 됐었는데…. 50년 넘게 살다보니까 세상이 목표한 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더라구요. 그러다보니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서 살게 되더군요.”
인터뷰 내내 김주호 씨의 목소리는 호쾌했고, 인생의 위기였던 순간을 회상할 때조차도 밝았다. 그렇지만 그의 인생은 여느 중도 시각장애인들처럼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는 28살이 되던 해에 병원에서 약물에 의한 급성 녹내장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아토피 때문에 복용해왔던 스테로이드 때문이었다. 27살에 시인으로 등단하고, 대학로에 노고단이라는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등 인생에서 제일 빛나는 시기였다. 점점 시력을 잃어간다는 두려움에 울기도 했지만, 어쨌든 가게는 계속 운영해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을 닦아냈다. 이후 그는 8년간 커피전문점을 운영했고, 천리안 커피동호회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나이 마흔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지금 부부의 곁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여운 아이가 함께 하고 있다.
그가 태권도를 시작하게 된 것은 2006년 11월이었다.
“40세를 넘어간 후론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운동을 하나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할 때였어요. 마침 아내가 태권도를 배워보지 않겠냐고 권유했고, 동네에 태권도장이 새로 생기기도 해서 그렇게 시작하게 됐죠.”
사실 시각장애인인 그가 운동을 배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배우는 사람도 힘들지만 가르치는 사람도 힘든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태권도장의 조찬호 관장은 그에게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맨몸으로 부딪치듯 하나하나 자세를 잡아주면서 가르쳐줬다.
그렇게 하길 7년 반, 대략 8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이제 그는 태권도 4단 승단에 성공했다. 시각장애인으로서는 국내 최초였다. 그렇지만 장애인인 그에게 대련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이 대련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제가 주짓수라는 유술기도 배우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배운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대결을 하거든요. 태권도도 도복의 깃이나 띠에다 방울을 달아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현재 세계 장애인 태권도 대회의 규정을 보면 몸통만 찰 수 있게 되어있는데, 그 정도라면 시각장애인들끼리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제 김주호 씨에게 태권도는 단순한 취미 이상이다. 그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태권도 지도 매뉴얼을 만들기 위해 사범 연수 시험에 도전하고 있다.
“저는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운명이 ‘움직일 운(運)’에 ‘목숨 명(命)’자를 쓰는데, 말 그대로 결국 명이란 것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움직임에 따라 흘러가면서 그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라고 생각해요.”
(2014.08.15 제911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