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장애인상 수상한 황윤석 차장
“생각날 때가 행동으로 옮길 때다, 그게 바로 제 좌우명입니다.”
‘올해의 장애인상’ 수상자인 한국철도공사 부산경남본부 황윤석(시각장애 1급, 49세) 차장은 좌우명대로 고민하고 주저하느라 시간만 보내기 보다는 행동으로써 증명해 보이는 삶을 살아왔다.
시력을 잃기 전 그는 여느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아왔지만, ‘언젠가는 역장이 되겠다’는 목표를 향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1984년 국립철도고를 졸업하고 운수서기보 9급으로 철도공사에 입사한 그는 2001년까지 울산의 호계역과 장생포역, 부산의 부산진역으로 자리를 옮기며 화물과 수송, 서무 등을 담당하며 ‘역장’을 향해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나갔다.
그러나 그 무렵 눈에 이상이 찾아왔다. 처음엔 밤눈이 나빠진 줄로만 알았는데, 어느 날 글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놀라 병원을 찾았다. 의사에게서 망막색소변성증이란 진단을 받고 실의에 빠졌다. 황윤석 차장을 가장 두렵게 한 것은 가족을 책임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회사 측에서도 병을 고친 이후에 다시 돌아오는 것이 어떻겠냐는 사실상의 퇴사 권유를 해왔다. 일주일의 말미를 줄 테니 최종결정하라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사랑스러운 아내와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회사 측을 설득하기 위해서 시각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전화상담이나 철도와 연계한 관광상품을 안내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해 보였고, 곧바로 홍보 업무 보직을 회사 측에 요청했다.
“홍보 업무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때 처삼촌이 케이블 방송사 사장이셨는데, 언론사 사장이시다보니까 여러 사람들과 만날 기회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많은 분들과 만나고 얘기하다 보니까 두려움도 없어지고, 이렇게 하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회사 측은 황윤석 차장의 제의에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다행히 그 무렵 정화원 전 국회의원과 만날 수 있었는데, 그의 어려운 상황을 듣고 그가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렇게 홍보 업무를 맡게 되었지만, 여전히 시각장애인인 그가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 섞인 시선이 그를 따라다녔다. 때로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몸소 겪으며 눈물을 흘렸던 적도 있었다.
“홍보 업무차 모 방송국을 찾아갔는데 ‘장애인이 방송국에 구걸하러 왔냐’는 반응이었어요. 나중에 명함을 제시하니까 바뀌기는 했지만, 나름 사회에서 엘리트라고 불리는 방송사 직원들도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한번은 어머니 기일이라 야근 근무를 빠지고자 했지만, 당시 상사였던 사람으로부터 “눈도 안 보이는데 무슨 제사냐? 야근이나 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그때만큼 비통했던 적이 없었고, 가슴에 한이 되어 남았다고 씁쓸하게 얘기했다.
이외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는 그 사람들을 탓하기보다 스스로의 능력으로 인정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센스리더를 활용해 정안인 못지않게 업무처리를 해오는 것은 물론 업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밖에도 그는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사회와 다른 장애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하고자 했다. 그렇게 노력하다보니 봉사단체 ‘삼당사랑회’의 회장, 부산장애인볼링협회 부회장, 부산시각장애인스포츠연맹 부회장, 장애예방국민운동본부 이사, 부산시각장애인연합회 이사 등 다양한 직함을 갖게 됐다.
“살기 위해 하는 몸부림이 아니었나 싶어요. 안 보인다는 이유로 주저앉기 싫어서,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의식을 끊임없이 인지하기 위해서 뭔가 해왔던 것 같아요. 결국 저 자신을 위한 노력이고 활동이었던 거죠.”
황윤석 차장은 그동안의 삶을 이렇게 표현하며, 앞으로도 그 몸부림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는 그의 몸부림은 누군가에게는 나태하게 살아온 삶에 대한 반성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되고 있다.
(2014.05.01 제904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