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각장애인 한의대 설립 추진 힘쓰는 이승권 교사
안마의 건강보험 적용과 침술권의 법적 보장 등은 오랫동안 시각장애인계의 핵심과제로 이어져 왔고, 본지도 이에 대해 다룬 바 있다. 한의대 설립 추진 논의에 참여하고 있는 서울맹학교 이승권(남, 46세, 1급) 이료교사로부터 그 배경과 논의 현황을 들어보았다.
“최근 들어, 정형외과에 가면 도수치료라고 하는 서양식 수기요법이 실비보험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한방에서는 추나요법이라 하여 카이로프랙틱 기술과 유사한 요법이 보험 적용이 되고 있죠. 이들과 유사한 안마도 보험 적용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이 교사는 덧붙였다. 건강보험이나 침시술권 보장 등은 의료법상 의료인의 조건을 갖춰야만 누릴 수 있는 전문적 혜택이기 때문이다.
“정규대학과정과 국가면허시험을 통과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특히 침시술권의 경우, 한의사의 업무범위에는 명시되어 있는 반면, 안마사의 업무범위에는 명확히 침에 대해 명시된 조항이 없기 때문에 안마사들이 제도권 자격을 갖춘 한의사들과의 갈등에서 전적으로 불리하다는 사실은 분명하지요.”
이에 대한 해법으로, 기존 안마사 제도의 복지적 혜택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과 의료제도의 전문적 혜택을 위해 기존 틀을 벗어나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이에 대해 이 교사는 어떻게 생각할까?
“일반 보건의료계는 의사 뿐 아니라 간호사나 간호조무사까지도 국가면허시험을 봐야 자격이 주어지는데, 안마사만 시험을 보지 않아요. 중학교만 졸업해도 안마교육을 받아서 자격증을 딸 수 있는 구조, 무시험으로 자격증을 받는 것, 안마 독점권, 이런 것들이 안마사 제도의 복지적 성격을 보여줍니다. 안마사들도 이런 혜택을 계속 원하고 있고요. 하지만 건강보험이나 침술법제화 등 전문적인 혜택을 받으려면 결국 대학을 세울 수밖에 없는 겁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대학설립이라는 공감대 속에서 해결점을 모색하고 있는데, 여기서 또 의견이 갈린다고 한다.
“우선, 안마침술대학인 이료대학을 설립하고자 하는 입장이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제기되었는데요. 기존 안마사로서의 권리를 의료제도권 내에서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정규대학 학사자격을 갖춰 한의사들처럼 건강보험이나 침시술권을 받아내도록 요구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안마권 독점과 의료인으로서의 혜택을 동시에 요구하는 것이므로 의료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가 될 뿐 아니라, 의료계와의 갈등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고 이 교사는 지적했다.
“안마사가 기존 복지 차원의 혜택을 따르는 자격과 전문교육을 받은 자격으로 이원화되는 현상이 벌어져 시각장애인계 내부의 갈등도 예상됩니다. 이미 한 번 무산된 전례가 있지요.”
내부 갈등은 문제 해결의 동력을 갉아먹는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이에 대한 대안은 없을까?
“저는 기존 안마사와 별도로 한의사가 될 수 있는 한의대 설립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의사가 되면 전문의료인이 되는 것이니까 건강보험 적용과 침술권 확보가 저절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죠. 시각장애인들이 안마와 침술업을 하면서 원하는 혜택을 받으려면 국내에서는 한의사가 되는 길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일반 한의대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해서도 그는 해법을 제시했다.
“시각장애인 교육의 노하우를 가진 교수진을 구성하고 기존의 안마침 교육을 특성화 대학과정으로 재편합니다. 일단 만들어지면, 일반 한의사들과 동일한 절차이기 때문에 외부와의 갈등은 없을 것이라 봅니다. 시각장애인계 내에서도 안마사 자격증이 이원화되지 않고, 한의사라는 새로운 직업 영역에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지요.”
여기서 문제는 정규대학교육 자체가 4년 이상이 되는 유상교육이라는 점이다. 이료대든 한의대든 이 과정을 다 마치고 얼마나 효력있는 자격증을 딸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특히 한의대의 경우는 한의사 면허시험에서 합격하지 못하는 경우, 유상교육을 받고서도 자격증을 따지 못하니 지금보다 더 후퇴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이 교사는 특성화 단과대의 설립을 통한 안마와 침술 전문자격 취득이 시각장애인 진로 기여에 이바지하리라는 희망을 외국의 사례에서 찾는다.
“중국 창춘공립대학과 북경연합대학의 5년제 침구대학과정에는 비장애인반과 시각장애인반이 운영되는데, 과정을 마치면 동일한 자격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일본 쓰쿠바 대학의 부설 시각장애인물리사, 침구안마사 양성 과정을 마치면 우리 보건복지부에 해당하는 후생성 주관 국가면허시험 응시 자격이 주어지구요. 스페인의 온세 대학을 비롯한 유럽의 13개 대학에도 시각장애인만 들어갈 수 있는 물리치료과가 있어, 시각장애인 물리치료사들이 직접 지점 개설과 진단, 치료까지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집니다.”
일반 한의대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침구 안마과를 만드는 것은 한의사들의 반대로 성사되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특성화 단과대 설립은 언급한 외국 사례와 같이 시각장애인의 전문직 확보에 충분한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올해 2월부터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이하 한시련)와 대한안마사협회(이하 안협)가 주축이 된 대학설립협의체가 구성되어 논의 중에 있다. 안협에 이료대학을 설립하는 방향과 한시련 추진으로 한의대를 설립하는 방향이 검토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논의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그에게 한 걸음 더 들어간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한의대가 설립된다면, 기존 안마사자격증을 딴 분들은 경력 인정 형태로 사이버대학 등의 원격통신교육에 편입학해 약간의 연수를 거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또한 한자 원서로 수업하는 기존 한의대의 이의 제기에 대비해 기존의 복잡한 한자점자 체계와 달리 배우기 쉬운 한자점자 개발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승권 교사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설립될 한의대의 추가 기능까지 구상하고 있다.
“저는 한의대를 설립할 때 두 가지 부속 기관을 두자는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한 가지는 적합업종개발센터를 만들어 시각장애인들에게 직업의 활로를 열어줄 수 있도록 대학 단위에서 연구하고 개발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특수교육지원센터를 만들어 전국에서 시각장애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체계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는 국내에서 시각장애인이 안마와 침술로서 정당한 지위와 혜택을 누리는 길은 대학 설립의 길 뿐이라고 자연스럽게 결론을 이끈다. 어렵더라도, 외부에서 주는 현재의 혜택에 안주하기 보다는 미래에 스스로 정당한 권리를 가지기 위한 방향으로 함께 의연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희망과 울림을 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2019. 6. 1. 제102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