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애인 학습환경 개선에 앞장서는 심준구 대표
백 세 시대가 왔다는 사회적 공감대 속에서, 평생교육시설 천여 개가 생겨나는 등 평생 학습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지난 4월, 사회적기업 한국복지방송이 보건복지사이버평생교육원(이하 보사평)을 부설기관으로 인수했다는 소식이 언론을 탔다. 본 호에서는 시각장애인으로서 사이버 평생교육원을 운영하게 된 한국복지방송의 심준구(남, 51세, 1급) 대표의 이야기를 싣는다.
“시각장애 당사자가 이런 기업이나 기관을 운영한다는 사실 자체의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방송과 교육 접근성을 위한 노력은 앞으로도 어떤 형태로든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심 대표가 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그 자신이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중도에 시력을 잃으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가 대학교에 입학한 1988년에는 장애 학생을 위한 제도가 전혀 없었다. 요즘은 흔한 대필자나 자원봉사자도 구하기가 어려워, 강의를 통째로 녹음해 외우며 공부해야 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대체하는 보고서는 전부 타자기로 쳐야 했고, 그마저도 혼자서는 오타를 확인할 수 없었다. 점수를 아예 받지 못할 때도 있을 만큼 당시의 상황은 열악했다.
“20대를 그렇게 보내고, 마흔 살 넘어 사회복지 대학원에서 공부했을 때는 오히려 최고 수준의 성적으로 졸업을 했어요. 왜 이렇게 된 걸까요? 공부에 대한 적절한 지원이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것이지요.”
암울한 대학 생활을 거친 끝에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1998년 당시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시각장애인들에게 새로운 직업 영역 확대의 일환으로 연구 사업을 진행했던 것이다. 거기서 1급 속기사 전문자격증을 취득한 심 대표는 청각장애인용 자막방송을 전담하는 회사에서 근무했다. 이를 통해 장애인 최초 속기사로 알려지게 된다.
그는 2011년 9월, 현재의 한국복지방송을 설립하면서 독립했다.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고, 장애인 속기사 일자리도 창출했다. 지금은 방송 및 교육 접근에 어려움을 겪는 취약 계층을 위해, 각 방송사와 사이버대학의 의뢰를 받아 수화방송, 자막방송, 화면해설방송을 제작한다. 취약 계층을 위한 노력과 교육 접근성에 대한 숙고는 보사평의 인수로 이어졌다.
“한국복지방송과 사이버평생교육원 운영은 장애인 스스로 방송 및 교육 접근성을 돕는 일입니다. 장애인이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개인적인 경험으로 잘 알던 차에, 좋은 기회가 와서 보사평을 인수하게 된 거예요.”
현재 보사평에 있는 학위 및 자격증 취득과정은 사회복지사, 보육교사, 한글교육교원, 건강관리사의 네 과정이다.
“일반 대학은 정해진 학기에 따라 학생을 모집하지만, 사이버평생교육원은 매월, 학생들의 신청으로 맞춤형 강의가 열립니다. 우리 목표는 시각, 청각, 뇌병변, 지체 등의 장애인들뿐 아니라, 다문화 가정과 이주민 등 교육 콘텐츠에 접근이 어려운 모든 사람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것입니다.”
심 대표는 보사평의 시스템 고도화 작업을 위해, 강의 콘텐츠뿐 아니라 수업을 듣기 위해 필요한 모든 학습관리 시스템을 최적화할 예정이다. 사회 기여에 도움이 되는 과정을 개설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현재 개설중인 과목 외에 어떤 과목에 대한 수요들이 있을지 검토하고 연구하는 과정이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보사평을 인수하면서 달라지는 점은 우선 본원 사무실이 있는 구로구 지역 주민의 장학 지원과 취약계층의 수강료 할인 혜택입니다. 다른 개발이 필요한 고도화 작업과는 달리, 바로 적용이 가능하니까요.”
한편 보사평의 학사 과정은 전문학사학위 취득 과정이 일반 대학과 동일하게 1년 반에서 2년 소요되며, 자격증 취득 과정은 수개월에서 1년 정도 소요된다. 홈페이지와 콜센터에서 무료로 진행되는 학습설계 상담을 통해 필요한 학위와 자격증 문의 및 수업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이 밖에도 심 대표는 작년 5월, 시각장애인들의 사회적 여론 형성으로 복지와 학문의 발전에 기여하는 단체인 한국시각장애인아카데미의 회장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방송 접근성을 위한 노력이 인연이 되어 프로그램 MC를 맡았던 극동방송에서, 방송인으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좋은 MC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망막색소변성협회의 홍보대사로서 자신과 같은 병명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대변해, 망막색소변성에 대한 연구와 치료 비용에 대한 공적 지원의 필요성을 알리는 역할에 앞장서고 있다.
“우리 장애인들은 적절한 지원이 있을 때 공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관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하는 데 장애가 없도록 사회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저 하나만의 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장애인들의 불편함 해소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장애가 없는 사회를 바라는 만큼이나 장애인들의 방송, 교육 접근성을 높이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그의 열정적이고도 성실한 발걸음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2019. 6. 15. 제102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