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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점자새소식] 이상재 교수, “사회에 빚진 것을 갚을 뿐”

작성자 기획총무팀

작성일 2014-03-17 오전 11:4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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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점자새소식] 이상재 교수, “사회에 빚진 것을 갚을 뿐”
작성자 기획총무팀 작성일 2014-03-17 오전 11:40:36 (조회 : 3799)

이상재 교수, “사회에 빚진 것을 갚을 뿐”

  시각장애인 이상재 교수의 하루는 매일 다섯 시 십 분에 일어나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으로 시작된다. 매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6시 30분 천안행 기차를 탄다. 두 시간 넘게 걸려 도착한 곳은 나사렛대학교. 연구실에서 강의 자료를 챙긴 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학생들이 그를 반긴다.
  네다섯 시간씩 학생들을 가르치고 난 후에는 각 지역으로 공연을 다닌다. 어제만 해도 오후 두 시에 천안, 다섯 시에는 서울역 광장에서, 그리고 여섯 시에는 일산에서 공연을 마치고 돌아왔다. 가볍게 샤워를 한 뒤 다음 공연 준비를 위해 악보를 외우고 수업 준비를 하다보면 새벽 한두 시를 넘기기 일쑤다.
  수업이 없는 날에도 공연과 연습 스케줄로 빡빡하다. 매주 하루는 반드시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 단원들과 6시간씩 연습을 하는데, 공연이라도 잡혀 있는 주에는 사나흘동안 모여서 연습한다.
  이렇게 바쁘게 생활하면서도 이상재 교수는 “날짜나 시간이 맞지 않아서 공연을 놓칠 때가 많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또 “몸이 3개였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웃기도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진즉에 지쳐서 쓰러졌을 만한 강행군을 하면서도 그는 왜 이렇게 바쁘게 살지 못해 안달인걸까?
  “빚지고는 못사는 성격이라서 그래요.”
  뜬금없는 답변이라는 생각이 들참에 이어지는 그의 말에 저절로 ‘아, 그렇구나!’하고 고개가 끄떡여진다.
  이상재 교수는 중앙대학교에서 클라리넷을 전공했다. 중앙대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미국 피바디 음대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6년간 생활하며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포기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유학을 마친 뒤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눈이 되어주었기 때문이었다.
  “김치를 챙겨주던 사람, 길을 잃고 헤매던 저를 안내해준 사람, 저를 위해 대신 수업 내용을 타이핑해주던 사람…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귀한 도움을 받아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을 ‘빚진 자’라고 표현했다. 이 고마운 ‘빚’을 갚기 위해서 더 열심히 살아가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고. 그는 그래야만 먼 훗날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음악가의 ‘좋은 전례’로 남고자 하는 그의 바람도 그가 더 열심히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제가 만약 연습 시간을 지키지 않게 되면 ‘시각장애인 음악가들은 왜 이래요?’ 이런 말이 나오게 돼요.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하나하나가 상징성과 대표성을 갖는 거죠.”
  때문에 그는 공연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늘 조심히 생활하며, 신뢰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일 년에 120여 회 정도 공연을 하는데, 그 중 20~30%가 재능 기부로 이뤄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얼마 전에도 이상재 교수는 경주에서 열린 ‘세계물포럼당사자준비총회’에서 성공적으로 공연을 펼쳐 보이며, 시각장애인 음악가의 능력을 당당히 드러내 감탄을 자아냈다.
  한편,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전하는 것도 그가 사회에 보답하는 길 중에 하나다. 하트체임버는 이상재 교수가 같은 처지에 놓인 시각장애인들을 이끌고 가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시작한 오케스트라다. 2007년에 창단된 이후로 지금까지 230여 회에 달하는 연주회를 개최해왔다.
  “첫 무대가 2007년 7월 19일 영산아트홀에서 있었어요. 기립박수가 이어졌고, 옷 갈아입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었죠.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뭔가 시작됐구나. 잘 이끌고 가야겠구나!’”
  그때의 감동은 가슴 속 깊이 새겨져 하트체임버를 운영하며 겪어야 했던, 지금도 겪고 있는 행정적, 경제적 어려움에도 버틸 수 있는 힘이 됐다.
  그리고 2010년 10월, 120년 전통의 세계최고의 무대인 카네기홀에서의 초청공연은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당시 하트체임버는 네 번이나 기립박수를 받으며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쳤고, 끝난 이후에도 수많은 관람객들이 그들과 한마디라도 하기 위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상재 교수는 “올해 11월에 일본 공연이 있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때까지 크고 작은 공연 계획들이 잡혀있지만, 그는 더 먼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를 국제적으로 알리기 위해 중국 베이징에서의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이렇듯 그는 교수로서, 음악가로서, 오케스트라 단장으로서, 그리고 시각장애인으로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의 삶은 음악가의 길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되어 종종 ‘롤모델’로 언급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처럼 살라고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회의감을 느낄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쁜 것은 둘째치고서라도 음악 분야에서 성공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도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나는 음악이 아니면 못 살겠다’는 각오를 다진 사람이라면, “늘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조언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살아보니 알겠더라구요. 지름길이란 건 없어요. 금방 외운 영어는 금방 잊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처럼요.”


                                                                                                                            (2014.03.15 제9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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