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사진 봉사로 사랑을 나누는 시각장애인
“한 분, 한 분을 제 어머니, 아버지로 생각하면서 정성껏 사진을 찍어드리고 있습니다.”
한 중복 시각장애인이 홀로 살아가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5년간 사비를 들여 어르신들의 영정사진을 찍어드리고 있어 주변에 훈훈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소문의 주인공은 바로 시태훈(47세, 시각장애 1급․지적장애 3급) 씨. 그는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마다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선다. 근처의 노인정은 물론, 요청이 있다면 지방으로 내려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수․목요일 외에도 그는 미혼모 시설을 찾아가 돌 사진을 찍어주거나 공원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등 다른 이들을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을 쉬지 않는다.
시태훈 씨에게 봉사활동은 어려운 환경에도 절망하지 않고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제겐 세상이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고, 사물들이 두세 개로 보여요.”
그는 시각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왼쪽 눈으로는 어떠한 것도 볼 수 없었다. 그나마 시력이 남아있는 오른쪽 눈은 10cm 이내에 있는 것들만 구별할 수 있었다.
가난한 농촌 살림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게다가 시각장애와 지적장애까지 갖고 있는 그는 형제들에게 구박 덩어리였다. 형제들의 계속된 냉대를 견디지 못한 그는 18살이 되던 해에 따로 나와 살기 시작했다.
먹고살기 위해 폐지를 모아서 팔았고, 신문배달도 했다. 적은 돈이었지만 차곡차곡 모아서 신문지국을 인수했다. 2년 뒤에는 우유대리점도 운영하기 시작했다. 폐지를 모아서 팔았을 때부터 인근 초등학교에 노트를 기증해왔던 그는 어느덧 소년소녀 가장 38명에게 생활비를 보태주는 기부천사가 되었다.
그러나 불행은 너무나 갑작스럽게 찾아와 어렵게 이뤄놓은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길을 가다가 갑자기 쓰러져 발작을 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검사결과, 그의 뇌는 막이 없는 기형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로 인해 간질이 찾아왔다는 것. 치료를 위해 사업을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왔지만, 건강을 되찾지도 못하고, 돈은 돈대로 잃어버렸다.
“그때는 활동보조인제도가 없어서 혼자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어요. 갑자기 쓰러져서 발작이라도 하면 사람들이 카드를 훔쳐가서 써버리고…. 남이 쓴 3천만 원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됐어요….”
불행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사기행각에 신분증이 도용돼 누명을 쓰고 1년 6개월 동안 복역해야만 했다.
하루하루가 지옥같았다. 자살하기 위해 한강공원에 몇 번이고 찾아갔지만 그때마다 간질로 쓰러져 원하던 바를 이루지 못했다. 그러던 중 의사에게 취미생활을 가져보라는 조언을 받았고, 때마침 한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시각장애인 카메라교실을 운영한다는 것을 들었다.
그렇게 그는 카메라를 들었다. 우울증을 떨치기 위한 방안으로 시작했지만, 어느덧 실력이 쌓여 공모전에서 대상을 종종 받을 정도가 됐다.
“어느 정도 실력을 쌓고 나니 다른 이들을 찍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어렸을 때 함께 살았던 할머니, 할아버지도 생각이 나고 해서 2009년부터 영정사진을 찍어드리게 된 거에요.”
처음 그가 영정사진을 찍어드리는 봉사활동을 하고자 찾아갔을 때 돌아왔던 반응은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사진을 찍느냐?”라는 차가운 시선이었다. 마음이 아팠지만 굴하지 않고 사진을 직접 찍어 보여준 뒤 인정받았다. 시태훈 씨의 선행이 알려지자 지방에서도 그를 찾는 일이 많아졌다.
“지금도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이 많아요. 마음 같아서는 다 찍어드리고 싶지만 비용 때문에 한 달에 찍을 수 있는 양에 한계가 있어서….”
사실 그는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수당으로 월 48만 원을 지원받아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병원에 진 빚 800만 원을 나눠서 갚고 있는 상황에서 아파트 임대료와 관리비, 전기요금까지 낸 뒤에는 얼마 남지 않는다고. 봉사활동에 필요한 돈은 가족사진 촬영비로 받는 7만 원과 후원금을 모아서 충당하지만 이조차도 마이너스일 때가 많다고 했다.
“영정사진은 한 달에 100장 정도 찍는데, 인화 비용이 20만 원, 액자 비용으로 40만 원이 들어요. 일반 사진은 적게는 300장에서 많게는 600장까지 찍어서 포토프린터로 인쇄하는데 용지값이랑 잉크값이 많이 들죠.”
이런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앞으로도 다른 이들을 위해 사진 찍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세상에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지만 남을 돕기 위해 나서는 이들은 많지 않다.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아직은 남을 도울 때가 아니라고,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돕겠다는 말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웃들을 외면하는 이들에게 시태훈 씨의 선행은 봉사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보는 좋은 계기가 되고 있다.
(2013.09.15 제889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