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만드는 시각장애인, 김재왕 변호사
우리나라에서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불편함이 뒤따른다.
이 같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그동안 장애인들은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배려를 요구해왔다. 그로 인해 사회 환경이 점차 바뀌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색안경을 낀 채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
이런 대한민국의 현실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며, 장애인들이 편의를 요구하는 일이 당연한 권리로써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말하는 시각장애인이 있다.
본지에서는 그를 만나기 위해 5월 22일, 서대문구 합동에 있는 ‘희망을 만드는 법(이하 희망법)’ 사무실을 찾았다.
올해로 36세가 되는 그의 이름은 김재왕. 작년 봄 ‘국내 최초 시각장애인 변호사’로 화두가 되었던 인물이다. 만면에 미소를 띤 채로 기자를 맞이한 김재왕 변호사는 “희망법에서 장애인 인권 분야를 맡아 활동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 어렵다는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놓고 하필이면 ‘돈 안 되는’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 이유, 대체 무엇일까.
2003년, 김재왕 변호사는 서울대 대학원에서 생물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 무렵 시력이 나빠진 것 같아 찾은 병원에서 “시신경이 죽고 있으며, 이미 진행이 많이 된 상태다”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진단을 받았다.
현미경을 끼고 살다시피 해야 하는 학문 특성상, 그는 더 이상 학업을 수행할 수 없었다. 대학원을 그만 두고, 집에만 틀어박힌 채로 느닷없이 찾아온 불행을 곱씹으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나날이 6개월 간 이어졌다. 그러던 중, 더 이상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복지관을 찾아가 재활훈련을 받으며, 다시 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했다.
이후, 그는 친구의 권유를 받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상담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단란한 가정을 이루는 행복도 맛봤다. 그렇지만 남아있는 시력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고,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다른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008년, 그는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솔직하게 말하면 (변호사가 되면) 돈 좀 만질 수 있을 줄 알았다”고 대답하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로스쿨에 들어올 때부터 장애인 인권과 관련된 일이 하고 싶었어요. 제가 장애인 당사자이기에 누구보다 더 잘 알고, 또 잘할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는 로스쿨을 다니는 동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인권 운동에 남다른 관심을 두었다. 그곳에서 지금의 동료들을 만나 작년 2월,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법’을 창단했다.
“희망법은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익 소송․인권 교육․연구용역 사업 등을 진행하는 모임이에요. 비영리단체다보니 운영자금은 개인 후원이나 출판, 교육사업 등 자체 수익으로 충당하고 있구요”
김재왕 변호사는 작년 10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작년 대선 무렵, 시각장애인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선거 공보를 만들 것과 토론회 방송에서 수화 화면을 확대할 것 등을 요구하는 소송을 진행했었다.
“앞을 보지 못하니까 재판 자료나 증거물 사진 등을 보는 데 어려움이 있었어요. 재판에서도 재판장의 표정을 읽을 수 없으니 어떤 상황인지 파악할 수도 없고….”
재판은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지만, 그에게 귀중한 경험이 되었다. 그는 다음 선거 무렵 소송을 다시 제기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은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요구를 해야 하는 일이 많은데, 그런 요구들이 당연한 권리로 여겨지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그는 이를 위해서 장애인들이 불편한 점을 느꼈을 때 귀찮다고 그냥 넘어가지 말고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위에 진정을 넣든 구청에 민원을 넣든 다양한 방법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의견을 표출해야만 세상이 바뀐다는 것.
김재왕 변호사는 오늘도 차별받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대변해 목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그 누구의 인권도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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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1 제882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