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클리 음대 합격한 시각장애인 강상수 씨
“재즈의 본 고장인 미국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다양한 국가에서 온 사람들과의 인연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봄기운이 성큼 다가온 2월 18일, 대학로에서 만난 전맹 강상수(남, 25세) 씨의 목소리엔 설렘과 기대가 가득 묻어났다.
그는 “합격 소식을 어머니께 알려드렸더니 우시더라구요. 그래서 울컥했죠.”라고 말하며 합격 통지서를 받았던 때를 회상했다. 그는 올해 1월, 실용음악 부문에서 내로라하는 명문대인 버클리 음대에 합격했다.
그에게 음악은 삶의 일부나 다름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시각장애를 가진 아들을 위해 늘 음악을 들려줬다. 그는 장난감 대신 작은 건반을 두드리며 놀았고, 다섯 살 때는 옆집에서 피아노도 배웠다.
선천성 녹내장으로 한 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은 채로 태어나고, 8살 때 나머지 눈마저 시력을 완전히 잃었지만 음악이 있어서 괜찮았다.
사춘기 시절, 잠시 피아노 대신 드럼 스틱을 손에 든 적도 있었지만, 중3 때 선교단체에서 찬양단 활동을 하면서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음악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선교활동을 위해 일본 동경의 한인학교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피아노 연주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자신의 연주를 듣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피아니스트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당시 광주에는 피아노 레슨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았다. 어렵게 레슨 선생님을 찾아도 충분히 레슨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독학한 끝에 나사렛대 음악목회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시각장애인인 그가 재즈피아노 연주자를 꿈꾸는 것은 쉽지 않은 길이었다. 클래식 악보와는 달리 재즈 악보는 점역되어 나와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수십, 수백차례 반복해 들으며 외워야만 했다.
합주할 때 다른 연주자들과 시선교환을 하며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없다는 것도 핸디캡이었지만, 그는 그만의 방법으로 해결했다.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에 감복한 교수님들은 그에게 버클리 음대에 진학할 것을 추천했다.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결국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작년 2월에 서울로 상경했다. 버클리음대와 학점교류가 인정되는 서울재즈음악아카데미에서 유학 준비를 했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버거웠다. 한 학기당 350만 원이라는 학원비도, 비싼 생활비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끼니도 못 때울 만큼 힘들었을 때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죠.”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레슨 시간 외에는 피아노 연습에 매진해 하루에도 6~7시간을 투자했다. 그의 이런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는지 한국장애인재활협회의 <두드림 펀드>에 발탁돼 학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작년 10월,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버클리 대학에서 재능있는 인재를 발굴하고자 전 세계를 다니며 입시를 치르는 <월드투어프로그램>이 한국에서 열린 것이다.
시험 과목은 초견, 준비곡 연주, 청음, 즉흥연주, 영어면접으로 이루어졌다. 처음 본 악보를 연습하지 않고 연주하는 초견 시험은 주최 측에 양해를 구했다. 다른 사람이 시험 30분 전에 악보를 읽어주면, 그것을 듣고 외워서 시험을 보는 방식으로 치렀다.
“6문제 중 3문제가 무작위로 나오는 건데, 1문제를 못 외웠어요. 다행히 외운 문제에서 나왔는데, 실수 없이 연주해내자 교수님들께서 놀라시더라구요.”
초조한 마음으로 발표를 기다린 지 3개월, 그는 결국 합격통지서를 손에 거머쥐었다. 그가 무사히 버클리 음대에 입성하기까지는 한 학기에 만 육천불(약 1,734만원)이라는 고액의 등록금 마련과 비자 발급심사라는 장애물이 남아있다. 그래도 그는 희망을 잃지 않고 미래를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다.
(2013.03.01 제876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