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게이머의 요청에 화답한 게임 개발사
2004년 프로게이머 임요환과 맞대결을 펼쳐 유명세를 탔던 시각장애인을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맹학교 재학 당시 유행했던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너무도 하고 싶었던 이민석(남, 31세, 1급) 씨는 6개월 동안 매일 3시간씩 게임에 대한 이론을 점자로 익히고 연습하여 결국 당대 최고 게이머와 대결하기에 이르렀다. 비록 경기에서는 패했지만, 임요환은 “경기 내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농락당하는 기분이었다”며 이 씨의 실력에 놀라움을 나타냈다.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게임을 좋아하고 즐기는 시각장애인들은 많다. 국내 유일 시각장애인 게임 동호회인 아이프리의 플레이그라운드 동호회 회원 수는 100여 명이다. 동호회에 가입하지 않은 게이머들 수는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게임을 좋아하는 시각장애인’이 자신이 즐겨 하는 게임의 보이스오버 접근성을 높여 달라는 요청을 게임 개발사에 하였고, 개발사가 바로 응답하여 개선해 준 사례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A(남, 34세, 1급) 씨는 어릴 적부터 게임을 좋아하지만, 실명 후에는 할 수 있는 게임이 별로 없었다. 시각장애인용으로 만들어진 게임은 너무 쉽고 유치하기만 했다. 그러던 중 접하게 된 ‘서울 2033’은 그가 꿈에 그리던 게임이었다. 서울에서 원인 모를 핵폭발이 일어난 후, 어느 생존자 공동체에서 자란 주인공이 가족을 죽인 범인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따라가는 내용이다. 구글플레이 유료 게임 다운로드 순위 2위를 기록한 인기있는 게임으로서, 애니메이션이나 소리 효과 없이 이야기 중심으로 진행되어 아이폰의 ‘보이스오버(아이폰 자체 화면 낭독 기능)’를 이용하여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캐릭터의 ‘체력’, ‘멘탈’, ‘돈’ 등 몇 가지 항목은 읽어주지 않아 완벽하게 즐길 수는 없었다.
우연히 앱스토어 후기 페이지에서 다른 시각장애인이 올린 보이스오버 접근성 개선 요청 글을 보게 된 그는 ‘서울 2033’ 게임 개발사의 “우리는 경험이 부족하니 가르쳐줄 수 있겠냐”는 답글을 보고 직접 메일을 보냈다. 이미 ‘넓은마을’에 게임과 관련하여 보이스오버 사용법에 대해 올린 글이 있었으므로 그것을 중심 내용으로 메일을 보낸 것.
게임 ‘서울 2033’ 개발사 ‘반지하 게임즈’는 글을 올린 지 이틀 만에 개선을 약속했고, 그 후 메일을 통해 자세한 의견을 주고 받은 끝에 그가 요청한 사항을 모두 게임에 반영하였다.
“처음에는 아예 시각장애인용으로 새로 만드는 게 낫겠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시각장애인용으로 만드는 게 빠르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당장 급한 부분 몇 가지만 개선해주면 되고 시각장애인용이란 이름을 달고 나오면 시각장애인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해주었어요.”
A 씨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용으로 제작된 게임은 오디오 게임이라고 해서 소리 들리는 방향으로 찾아가는 방식이 대부분이라, 아무리 음향이 좋다고 해도 게임의 맛이 떨어진다고 한다. 게임이 너무 단순할 뿐만 아니라, 게임 속에서조차 시각장애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는 것.
“게임은 시각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차이 없이 즐길 수 있어야 해요. 시각장애인이니까 소리로 재미있게 즐기면 되지 않나 하는 개념 자체가 잘못된 거죠.”
그가 생각하는 좋은 게임은, 배우기는 쉬워야 하고, 완전히 마스터하기는 어려워야 한다. 그래서 ‘서울 2033’ 같은 게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물론 게이머의 개인 취향에 따라 선호하는 게임의 종류는 달라질 수 있고 필요한 사항도 달라진다.
아이프리 게임 동호회 회원이자 전 운영자에 따르면, ‘서울 2033’ 같은 텍스트머드게임은 예전부터 있었고, 스토리 중심의 텍스트 기반이라 접근성이 좋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텍스트 기반 게임은 예전 도스 체계에서 텍스트머드게임이라는 종류로 많이 제작되었던 형태이나, 요즘은 화려한 그래픽 위주의 게임에 밀려 인기가 적은 편이다.
게임들이 그래픽 위주이다 보니, 기존의 단축키나 사운드가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상황이 변화하는 시점에 사운드를 넣어주거나, 단축키 하나라도 더 넣어주고, 단축키도 마우스보다 키보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면 시각장애인도 게임을 즐길 만하다고 한다.
전국장애학생 e스포츠대회에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하는 이민석 씨는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비장애인인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는 도구이자 계기가 됐다”라고 말한 바 있다.
게임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즐거운 여가 시간을 보내는 도구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A씨의 사례는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불편을 감수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발사에 의견을 개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가르침을 준다.
(2019. 4. 15. 제1023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