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상이 넓어지니, 사각지대 이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 상일1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 김영주 님의 참여 이야기 -

망설임 속에서 내디딘 첫걸음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늘 다니던 길조차 큰 도전이 되곤 합니다. 그렇기에 동네 주민들과 교류하거나 외부 활동을 하는 것은 평소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저 ‘늘 다니던 대로, 평소처럼’ 조용히 지낸 삶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복지관 선생님의 따뜻한 권유로 ‘상일1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활동을 제안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시각장애가 있는 내가 회의나 활동에 민폐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섰지만, 용기를 내어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그 첫걸음이 1년이라는 시간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이의 엄마’에서 ‘지역사회의 이웃’으로, 넓어진 시선
그동안 저의 모든 정보와 안테나는 온전히 ‘아이들’에게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시각장애인 엄마로서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하는 것이 삶의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역사회보장협의체 활동을 시작하면서 저의 세상과 시선이 완전히 뒤바뀌는 경험을 했습니다.
마을을 둘러보니, 우리 동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정보 접근성이 너무나 취약한 어르신들과 장애인분들이 많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복지 제도를 몰라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정보 사각지대’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때부터 제게 새로운 습관이 생겼습니다. 어디선가 새로운 복지 소식이나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들리면, 무조건 스마트폰에 저장하고 메모해 두는 습관입니다.
“이 정보는 우리 동네 그 어르신에게 꼭 필요하겠다.”
“이 제도는 정보가 열악한 지적 장애인 가정에 도움이 되겠구나.”
실제로 최근에는 활동지원사 선생님이 돌보던 장애 가정을 위해 보건복지부에 직접 수소문하여 복지 혜택을 연계해 주기도 했고,
다리를 다친 이웃 어르신을 위해 강동구민 구민 안전 보험 혜택을 알아보고 직접 서류를 프린트해 전달해 드리기도 했습니다.
내가 모은 작은 정보가 누군가의 삶에 실질적인 힘이 되는 것을 보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보람과 자존감의 성장을 느꼈습니다. 아이들만 바라보던 좁은 마음의 범위가,
이제는 지역사회 전체로 넓어진 것입니다.

장애인 당사자 위원으로서 바라는 ‘마을의 변화’
현재 강동구에서 장애인 당사자가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으로 직접 참여하는 곳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지역 활동의 특성상 경험이 많으신 지역주민 어르신들이 주축을 이루다 보니, 새로 참여한 주민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했을 때
가로막히거나 의견 개진이 어려운 딱딱한 분위기가 존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 ‘시각장애인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내보려 합니다. 비장애인들은 무심코 지나치는 깨진 유도 블록, 점자 안내판이 없는 공공시설 등은
당사자가 직접 목소리를 내야만 비로소 바뀌기 때문입니다. 제가 활동하는 상일1동이 시각장애인 친화적인 동네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는 조금 더 자신감을 느끼고
당사자의 시선에서 필요한 제안을 당당히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복지관의 든든한 지원, 지속 가능한 참여의 원동력
시각장애인이 비장애인 중심의 지역 활동에 지속해서 참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동의 제약도 크고, 회의자료를 읽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1년 동안 지치지 않고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의 세심한 지원 덕분이었습니다. 매번 회의가 있을 때마다 동행하며 이동을 지원해 주었고,
회의자료를 사전에 점자 인쇄물로 변환하여 제공해주는 배려가 있었습니다. 단순히 “참여해 보세요”라고 연계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각장애인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든든한 발판을 마련해 준 복지관과 관장님 이하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우리가 꿈꾸는 내일: ‘1일 가족’과 ‘심화 인식개선 캠프’
마지막으로, 협의체 활동을 하며 우리 지역사회와 복지관에 바라는 두 가지 소망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첫째, 소외계층 어르신들과의 소규모 ‘1일 가족 나들이’입니다.
단체로 몰려다니는 대규모 행사 말고, 시각장애인 5명, 1인 가구 어르신 5명처럼 10명 안팎의 소규모로 모여 정말 ‘가족’ 같은 분위기로 수다를 떨고 과일을 나누어 먹는
소소한 나들이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눈이 불편한 시각장애인을 위해 어르신이 젓가락 위치를 알려주고 챙겨주신다면, 평소 도움만 받던 어르신들도 “이 나이에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구나” 하는 깊은 삶의 활력과 자존감을 얻으실 것입니다.
둘째, 보행 체험을 넘어선 ‘시각장애인 1일 일상 살아보기’ 프로그램입니다.
기존의 짧은 안대 보행 체험은 시각장애인의 삶을 깊이 이해하기에 아쉬움이 있습니다. 방학 기간 등을 활용해 지역 주민, 학생들과 함께 안대를 쓰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거나, 시끄러운 환경에서 소리에만 의지해 대화해 보는 등 '일상 속의 어려움'을 반나절이라도 깊이 체감해 보는
심화 인식개선 프로그램이 활성화되기를 바랍니다. 직접 겪어봐야만 상대방이 진짜 원하는 배려가 무엇인지 마음으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움직이면 세상이 변하고, 내가 귀를 기울이면 보이지 않던 이웃의 아픔이 들립니다. 시각장애인 당사자로서 지역사회의 당당한 일원이 된
저의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상일1동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따뜻한 ‘복지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