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장면해설과 함께 더 가까워진 연극, ‘가을 반딧불이’
글|기획홍보팀 박서완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이 함께 공감한 시간
우리는 흔히 연극을 '눈으로 즐기는 예술'이라 말합니다. 무대 위 쏟아지는 조명, 배우의 미세한 손 떨림, 배경 속에 숨겨진 작은 소품들까지
모두가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어려운 시각장애인에게,
대사가 멈춘 찰나의 침묵은 때로 막막한 거리감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 막막함을 설렘으로 바꾸는 마법이 바로 '무대장면해설'입니다. 해설사는 대사와 대사 사이, 배우의 표정과 역동적인 몸짓, 무대 장치의 변화를
실시간 음성으로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이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시각장애인 관객이 극의 흐름과 감정선을 온전히 따라가며
비시각장애인과 나란히 앉아 같은 속도로 웃고 울 수 있게 돕는 소중한 '마음의 눈'이 되어줍니다.
작년 12월 5일~6일 이틀간, 강동아트센터 소극장 드림에서는 이 특별한 해설을 통해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이 하나의 언어로 공감하는
'가을 반딧불이' 공연이 열렸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그 따뜻한 현장을 소개합니다.
작품과 무대
연극 ‘가을 반딧불이’는 재일교포 사회의 애환과 소외된 이들의 삶을 특유의 해학적이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며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평단의 극찬을 받아온 정의신 작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합니다.
본 작품은 복지관이 기획하고, ESG 실천 기부 플랫폼 ‘알지’가 후원했으며, 옐로우브릭씨어터가 제작했습니다.
공연은 용인예술과학대학교 강수진 교수가 연출을 맡았으며, 배우 최윤재와 김대중 성우를 비롯한 실력파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 작품의 깊이를 더했습니다.

손끝으로 먼저 만난 이야기
공연에 앞서 진행된 터치투어는 관객들에게 또 다른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시각장애인 관객들은 무대 구조와 소품을 직접 만져 보고
설명을 들으며 공연의 배경을 먼저 만나 보았습니다. 손끝으로 확인한 무대의 형태와 소품의 질감은 곧이어 시작될 이야기를 더욱 또렷하게 그릴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터치투어에 참여한 한 관객은 “무대와 소품을 미리 이해하고 나니 공연을 훨씬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연극을 통해 시각장애인에게도 문화예술이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꼈습니다.”라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그 말처럼, 이 공연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 함께 문화를 경험하는 시간으로 다가왔습니다.
작품이 전하는 이야기
연극 작품은 변두리 보트 선착장에서 삼촌과 함께 살아가는 한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의 상처와 용서, 그리고 관계 회복의 과정을 따뜻하게 그려 냅니다.
잔잔하지만 오래 남는 이야기 속에서 관객들은 가족의 의미와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같은 자리에서 나눈 감동
공연이 끝난 뒤, 시각장애인 관객들은 “장면해설을 통해 배우의 표정 변화와 무대 배경, 소품까지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며 몰입해 관람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비시각장애인 관객들 역시 “시각장애인 관객과 함께 같은 감정을 나누는 경험이 인상 깊었고,
배리어프리 공연의 가치와 취지에도 깊이 공감하게 됐다.”라고 전했습니다.
보는 방식은 달라도 감동은 같은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 순간이었습니다.
무대 뒤의 고민
강수진 연출자는 “시각장애인 관객이 청각만으로도 작품의 감동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세밀한 소리 디자인과 무대장면해설의 조화에 깊은 고민을 담았습니다.
특히 해설이 단순한 보조 수단을 넘어 극의 일부로서 관객의 상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이어
“지난 2년간 무대장면해설 연극을 이어오며 문화예술이 장벽 없이 모두에게 닿아야 한다는 본연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무대를 통해 연극의 역할을 재발견했고, 저 개인의 삶 또한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무대장면해설을 맡은 한미리 성우에게도 이번 작품은 특별했습니다. “지난해 ‘리투아니아’를 관람한 시각장애인 관객이 연극을 ‘들었다.’가 아니라 ‘봤다.’라고
표현하신 말씀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관객이 장면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고 세밀하게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무대해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만드는 문화예술의 내일
지난해 ‘리투아니아’에 이어 이번 ‘가을 반딧불이’를 통해 무대장면해설연극의 가능성을 한 걸음 더 확장했습니다.
앞으로도 시각장애인의 문화 접근성을 넓히고, 지역사회가 함께 어우러지는 문화예술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그날 무대 위에서 반짝이던 작은 이야기들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마음속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