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점자는 1926년 송암 박두성(1888~1963)에 의해 창안되었다. 시각장애인들을 가르치면서 그들에게도 의사소통을 위한 문자체계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된 박두성은 각고의 노력 끝에 한글점자 ‘훈맹정음’을 세상에 내놓았다.
한글점자 이전에도 시각장애인들은 나름의 의사소통 수단을 가지고 있었는데, 조선시대까지 쓰인 ‘책력(冊曆)’이 대표적이다. 이것은 점자 형태와 유사하게 손으로 만져서 읽는 체계로 구성되었다. 점을 치는 점복업에 사용되는 ‘책력’은 사주 명리학에 의해 상담자의 출생 연월일시의 간지로 운명을 추리하는 만세력(萬歲曆)이라 알려진 표준체계에 근거하고 있다.
대체로 책의 형태로 되어있는 만세력을 시각장애인들은 대나무에 새긴 책력을 통해 익혔다. 대나무의 단단한 재질과 마디가 있는 형태상의 특질을 이용하여 촉각으로 읽을 수 있는 표기방식을 구축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른바 ‘죽력(竹曆)’이라 불리는 이 촉각문자가 우리나라 점자의 기원적 형태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시각장애인들에게 의사소통을 위한 보편적 활용 문자가 없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한국 시각장애인들의 의사소통을 위한 점자 개발의 필요성을 최초로 제안한 사람은 미국인 선교사 홀(Rossetta Sherwood Hall)이었다. 홀은 20세기 초 미국에서 활용되던 뉴욕식 점자체계를 바탕으로 하여 한글 최초의 ‘조선훈맹점자’(4점형 점자)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조선훈맹점자는 세로 2줄, 가로 2줄씩 4점형으로 만들어져 당시 시각장애인들 사이에서 보다 우수하다고 인식되던 6점형에 비해 편리성이 떨어졌다. 홀이 개발한 4점형은 자음과 모음이 한 덩이로 되어 있어 익혀야 할 글자의 수가 많고, 초성 자음과 종성 자음이 구별되지 않아 문자로서 결함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한 박두성은 홀에게 6점형 한글점자를 함께 제정할 것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홀이 제안을 거절하자, 박두성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설립된 제생원 맹아부(현 서울맹학교) 교사로 발령받은 후 브라이유의 6점식 점자를 토대로 한글점자 개발에 착수했다. 박두성은 제생원 학생, 일반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브라이유식 한글점자 연구를 시작하여 1921년 6점식 한글점자를 내놓게 되었다. 그 후 수차례의 수정, 보완을 거쳐 1926년 11월 4일 훈민정음과 음이 비슷한 ‘훈맹정음’이란 이름으로 한글점자를 발표하였다.
한글점자의 창안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박두성은 시각장애인들의 세종대왕이라 일컬어지게 되었다. 그에 의해 만들어진 한글점자는 시각장애인교육의 기틀이자 재활의 통로가 되어왔다.